본문 바로가기

직장 이야기

나의 취업기(5) 일본기업 데이터분석 취직2

지난 편에서 내가 일본 회사에 처음으로 취직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썼고, 이번에는 첫 회사에서의 2년간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얼떨결의 입사

일본 기업에 취직하는 다른 한국인, 혹은 외국인들과 비교할 때, 나는 상당히 준비가 안 된 편이었다.

일본어도 JLPT N1, 혹은 적어도 N2는 따고 지원하는 게 보통인데 (대체로 N1이나 N2이상이 자격요건이기도 하다), 나는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몇 달 정도 된 정도였고, JLPT는 본 적도 없었다.

또 주변에서 일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을 보면, 일본 대학을 졸업했거나, 일어를 대학에서 전공했거나, 일본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거나, 워킹홀리데이를 했거나, 일본에서 어학원을 다녔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어느 쪽도 해당되지 않았다.

지난 편에 언급했듯이 일본 취직을 목표로 지도해주는 연수 프로그램(학원) 같은 것도 있는데, 그런 것도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했던 것은, 나름대로의 일본어 공부 3개월 정도, 그리고 마이나비, 산업인력공단 등에서 열었던 취업박람회에 2회 정도 참여했던 것 정도였다. 그 이후에는 무작정 이런 저런 회사에 지원하면서 부딛혔다.

 

위에서 언급한, 나는 하지 않았던, 일본에 관련된 이런 저런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다면 일본에 대해서나 일본 취업에 대해서 조금 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전혀 감이 없었다. 

취업할 회사를 한국에서만 찾기보다, 눈을 넓혀서 찾아보려는 정도였고, 내 일본어가 부족한데도 뽑아주는 회사가 있다면, 내게 일을 시킬 수 있게끔 나름대로 계획이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나 나를 뽑아줄 회사에 대해서 책임감이 좀 부족했던 걸지도 모른다.

 

얼떨결에 입사한 T사는 외자계였지만 일본 오피스만 치면 50명 정도의 작은 회사였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 1위라는 점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면접 방식도 그랬고, 적절한 질문 스킬이 부족했기도 하고, 일본어 능력도 부족했다. 또한 최종 면접을 진행중이었던 다른 회사들도 여럿 있었어서, T사에서 내정(합격)을 받았을 때, 당장 결정하기 좀 망설여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T사로부터 상당히 빠른 회답을 요구받았는데, 제끼고 만약 다른 회사들에서 탈락한다면 소득없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얼떨결에 입사를 결정해버렸다.

내가 몰랐던 것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러가지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입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 같다.

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T사에서 2개월 가량 알바를 했는데, 정규직으로 계약을 전환하기 전부터 상당히 빡센 업무를 맡았다.

일본어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내가 잘못 이해했거나 흘려듣고 문제가 생긴 부분도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회사가 상당히 주먹구구식인 부분이 있었다.

프로젝트는 볼이 토스, 토스, 토스, ... 되면서 일이 진행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한테 볼이 왔을 때 누구한테 줘야 할지가 명확하지가 않았다. A한테 주는 게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A한테 토스하더라도, 매번 A가 나한테,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매번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개념이 없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하면서 익숙해진 대로 어떻게든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 경우에는 새로운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더욱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다 보니, 알바로 2개월 가량 일한 시점에서, 즉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이전에 이미 퇴사하고 싶어졌다. 그 때 퇴사하지 않은 이유는 단지 책임감 때문이었다. 회사가 나를 믿고 프로젝트를 맡겼으니 일단 이건 완수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너무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완수해냈다.

사장은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뭔가를 배웠기를 바랐고, 그 새로운 사업에서 앞으로 필요할 프로세스를 잘 짜두기를 바랐지만, 다시 하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맡은 일들은 좀 특수해서, 회사의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정말 잘 해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겠지만, 나에겐 쉽지 않았다.

 

첫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난 이 회사에서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3개월 간격으로 사장에게 퇴사하겠다는 면담을 했다.

사장은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어서, 매번 나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입사 초반부터 마음이 거의 회사에서 떠난 상태였고, 당장 사장한테 설득당하기는 했어도 오래 다닐 마음은 아예 사라진 상태였어서, 1년 정도는 별로 스트레스 안 받고 다닌 것 같다.

하지만 사장이 내 마음을 붙잡기 위해 협박을 했던 때, 그리고 내 직무 전환에 대한 약속을 안 지켰던 때에, 마음 속으로 퇴사를 확실히 결정했고, 그 때부터 이직 준비를 한 뒤, 2개월 후 퇴사를 통보하게 되었다.

배운 것들

나름대로 경험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름 빡세게 일해본 것도, 여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파와하라(일본 직장 내 갑질)를 당해본 것도, 작은 회사에서 일해본 것도,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데이터 분석 업무를 처음 해볼 수 있었던 것도, 처음으로 고객과 상담도 하고, 발표도 해본 것도, 다양한 나라의 고객들을 상대해본 것도.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내가 이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 이 회사랑 함께 내가 계속 즐겁게 일할 수 있을지, 앞으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었기 때문에 퇴사하게 되었다.

 

T사에 대해서는 쓸 말이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질까봐, 그리고 부정적인 말이 많아질까봐 최대한 생략했다.

데이터 분석

쓰다 보니까 푸념이나 하고, 데이터 분석에 대한 얘기가 없었던 점을 반성하여 여기에 별도로 추가한다.

T사에서 내가 맡았던 직무는 데이터 분석이다. 종종 부탁받아 통역, 번역 등 영업이나 마케팅에 대한 서포트를 하기도 했지만.

분석 프로그래밍 언어는 주로 R을 썼다. Python을 쓰든 엑셀을 쓰든 상관없지만, 데이터 사이즈가 커서 엑셀을 쓸 수는 없는 경우가 많았고, 사내에 R을 쓰는 동료들(같은 데이터 분석가)이 많다 보니, R을 쓰는 편이 서로 공유하거나 도움을 받기가 쉬워서 주로 R을 쓰게 되었다.

부분적인 분석에 대해서는 엑셀도 많이 쓰기는 했다.

 

T사에서 데이터 분석가들이 맡는 프로젝트도 기업 고객에 대한 컨설팅이라, 내가 현업에서도 하고 있는 고객 과제 이해, 제안, 분석, 보고서 작성, 발표 등의 일은 비슷했다.

 

T사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이 좀 특수한 분야이다 보니, 우선 그 기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관련된 전문서를 읽거나 논문을 읽거나 하는 데에도 시간을 들였는데, 고객들의 다양한 과제에 맞춰서 분석 방법을 설계하는 게 항상 어려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