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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이야기

나의 취업기(2) 증권사 재무팀에서의 2년

지난편:
나의 취업기: 한국에서 2년, 일본에서 3년(1)첫 취준

증권사의 구조

나의 첫 직장이었던 모 증권회사는, 국내 약 80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고, 시장점유율이나 자기자본 면에서는 중소형인 증권회사였다.
증권회사가 하는 일은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중개(HTS, MTS, 지점 영업 등)하거나, 직접 투자하는 것도 있고, 건설업 프로젝트 등의 대규모 자금 조달을 지원해준다든가, 주식 상장(IPO)를 지원해주는 일 등이 있다. 
우리 회사는 투자 중개 쪽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었다.

남녀비율 & 종합직과 업무직

남녀 비율은, 아마도 6대4나 7대3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우리팀은 거의 5대5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의 금융회사는 대체로 남직원과 여직원 간의 간극이 좀 있다.
증권사의 입사는 종합직/업무직 입사로 나뉘는데, 종합직은 대졸 공채이고, 업무직은 예전으로 치면 고졸 공채이다. 
요새는 업무직도 대졸로 채워지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고졸 대우를 받고, 거의(아마 100%?) 여직원이다.
10년을 일해도 대리를 달기 힘들다고들 한다.
반면, 종합직은 대체로 남자가 채용된다. 추세적으로 여자도 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남자이고, 듣기로는 여자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보여도 서류에서부터 걸러지는 경우가 많은 듯 한다.
종합직은 입사하고부터 주임이고, 3년 정도 일하면 대리로 승진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 대리 승진은 당연한 거라 승진이 아니라 진급이라 부르던가? 늦어도 1년 정도 늦어지는 정도다. 

 

업무직 여직원들은 급여도 적고, 승진도 힘들다. 
윗 사람들도 평가 시즌이 되면 은밀히 종합직 남직원을 밀어주는 분위기이고,
그렇다보니 소외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이 맺히고, 갈등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다.

증권사 재무팀에서 하는 일

증권회사에 따라 입사시에는 무조건 지점에서 2년을 일해야 한다든가 하는 곳도 있지만, 나는 재무팀에 입사하여 연수와 OJT도 재무팀에서 바로 받으며 실무에 투입되었다. 
나는 애초에 재무팀 자금 파트를 맡을 예정으로 채용되었고, 자금 관련 업무를 맡았다. 
당시의 나(1~2년차)로서 주로 하는 일은 자금의 입출납 실무, 관련 사내외 보고였다.
대리급 정도가 되면 타사와의 네트워킹을 위해 이런 저런 모임에 참가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자금의 조달 운용을 위해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에 관여하게 된다.
과장급이면 파트장으로 그런 것들에 더 책임이 높아지는 정도랄까.

 

재무팀에는 자금파트 뿐 아니라 회계파트, 세무파트가 있었는데,
난 잘 모르지만, 일반적인 업무시간 자체가 빡세보였다. 야근 수당도 안 나오는데...
특히 결산 시즌이 되면 너무나 빡센데,
결산이 가끔 있는 게 아니라 분기, 반기, 기결산만 해도 1년에 4번이라, 내가 보기엔 늘 빡세보였다.

사내문화

증권사에 종합직으로 입사하면, 업무직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승진 기회도 있고, 월급도 괜찮다.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도 급여는 적지 않은 편이다.
대신에, 이런 저런 꼰대 문화(?)를 견뎌야 한다.
좋은 사람들도 정말 많았지만,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꼰대들이다.

 

꼰대가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일 것 같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언행을 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연배가 있는 분들 중에 꼰대가 많지만,
꼰대 문화가 있는 집단에 들어가면 나이가 어려도 꼰대가 되기 쉽다.
군대가 그런 대표적인 집단이지 않나 싶다.

나는 군대에서도 윗사람으로부터 나의 존엄성을 짓밟혔다고 생각이 든 때는 거의 없었는데, 군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덕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을 보면, 군대에서 말도 안되는 일을 겪은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입사 이전에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언행을 겪은 적이 없다보니, 
회사에 있다 보면 종종 충격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게 당장 너무 견디기 힘들다기 보다는,
"사람한테 이런 말/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네? 충격적이군."
정도의 느낌이었다.

조금 강도가 셌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첫 사건이 있었던 날,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다.

"당장 출근하기 힘들 정도로 견디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안다면 얼마나 슬플까?"
"존중받지 못하면서,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존엄성을 팔아서 일할 바에는 조금 배고픈 편이 낫지 않는가?"

대략 이런 생각들을 했으나, 조금 신중해지기 위해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같은 생각을 3번 하게 되면 그 때 결정하자"

그 정도 충격을 받는 일이 2달에 한 번 꼴로 일어나, 처음 퇴사를 고민한 날로부터 반년 뒤에 퇴사를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주일 가량 휴가를 다녀왔으나, 마음이 변하지 않아 직속 보고 체계를 통해 한 분 한 분에게 퇴사 결정을 보고했다.
대체로 말리고 붙잡으려고 해주셨지만, 이미 충분히 고민했던 나는 상담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 정도에 팀장님 라인에까지 전부 보고하고 퇴사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증권사 재무팀에 입사했던 이유

되돌아보면, 입사할 당시에는 나름 부푼 꿈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배울 것도 많고, 나름 좋은 직장이다 싶었다. 
증권사는 다양한 산업의 기업들과 거래가 있고, 리스크 관리와 수익을 위해 그런 산업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있던 재무팀은 수익을 내는 부서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덜했으나, 타 팀 직원들과 교류하거나, 자금 흐름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았다.

 

투자에 대해서도 배우는 게 많았다. 나는 군대 시기 부터 소액이더라도 주식 투자를 해왔는데, 증권사 직원들은 대체로 개인적으로도 투자에 관심이 많다. 재무팀이더라도 그렇고,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땐 언제나 투자에 관한 얘기가 메인 테마 중 하나였다.

 

회사 선배들도,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8할 정도는 경영학과 출신이었고, 나머지 2할은 경제학과이든가, 관련학과, 혹은 경제나 경영을 복수전공한 경우였다. 

나는 전공이 전혀 관련이 없었고, 관련 공부도 거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몇 달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해도 재미있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니, 매일 하는 업무는 거의 똑같고, 피곤하고, 내가 하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십년, 이십년 정말 열심히 같은 팀에서 일해온 팀 선배들을 보면 나의 행복한 미래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정리해보면, 퇴사한 이유는 아래의 3가지 정도였던 것 같다.

  •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 오랫동안 남아 일한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지 않음
  • 일에 재미를 못 느낌, 가치를 못 느낌

퇴사 당시의 계획

당시까지 모은 돈으로 약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1년 안에 재취업하기로 정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새로운 분야가 그래 보였다.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한 뒤 그 쪽으로 재취업하기로 결정했다.
국비지원 6개월 과정이 있길래, 퇴사 직후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등록했다.

 

다음 편:

나의 취업기(3)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로의 재취업 준비

나의 취업기(4) 국비지원 연수과정, 일본기업 데이터분석 취직